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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미술관답사문]부산시립미술관을 다녀와서(부산시립미술관 전시감상문)

대왕잉어르 2021. 1. 19. 23:27

 

1121일 부산시립미술관에 가서 아트 인 부산 2009 인터시티를 보고 왔다. 이 전시는 동아시아 현대도시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성찰하기 위하여 도시를 하나의 구조로 파악하고, 나아가 그 속에 존재하는 개인을 유기적인 생태의 관점에서 성찰함으로써, 21세기 현재에 있어 도시의 의미와 가능성을 찾아보는 프로젝트이다.‘인터시티라는 주제는 도시의 상호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써 도시와 개인, 구조와 개체, 도시와 도시 사이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둔 용어이다. '도시와 상호성', '구조로서의 도시와 행위자 주체로서의 개인', '동아시아 도시 네트워크 프로젝트' 등이 이 전시를 견인하는 핵심이다. 전시에는 많은 작품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김성연의 포장의 세기_힘없이 바라보다타카하시 케이스케의 방향없음작품을 중심으로 감상을 했다.

 

[1] 김성연의 포장의 세기_힘없이 바라보다, 2009

 

 

이 작품은 포장박스를 설치한 작품이다. 크기가 일정한 박스들이 전체적으로 쌓여 있고, 작품의 중앙에는 줄무늬로 색이 칠해진 박스들이 쌓여있다. 색색의 박스는 일반 박스보다 역동적인 모습으로 쌓여있다.

작품의 가운데에 있는 색색의 박스들은 거대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제일 큰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서 이 형상이 바로 작품의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여러 색의 박스로 만들어져 있어서 어지럽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모습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냥 색색의 박스를 아무렇게나 놔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관람객이사람이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박스에 줄무늬로 색을 칠 한 것은 각각의 박스가 독특한 개성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다른 부분보다 팔, 다리 부분의 박스들이 역동적으로 쌓여있다. 역동적이다 못해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는 박스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위태롭고 불안하기 보다는 활동적이고 재미있는 모습이다.

색색의 박스들로 만들어진 사람은 자신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면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작품에서 이 사람이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사람을 통해 작가는 세상에 주눅 들지 말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면서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의 잘못된 문제에 그저 순응하면서 살아가지 말고, 바꾸려고 적극적으로 노력 하라고 하는 것 같다.

이와 대조적으로 베이지색의 일정한 크기의 박스는 규칙적으로 쌓여있다. 네모반듯하게 쌓여있는 모습이 안정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답답하고 무미건조한 느낌이 든다. 베이지색 박스의 중간 중간에는 사람 모습을 한 박스들이 놓여있다. 그냥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한 틀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속에 속박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람은 작가 자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다.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여기서 현대인을 둘러싼 일반 박스는 현대인이 처한 현실과 사회적 억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박스는 현실과 사람사이의 벽 같기도 하고, 박스의 베이지색은 무채색처럼 느껴져 암울한 현실과 미래를 나타내는 것 같다. 이런 박스 사이에 갇힌 현대인들은 힘들고 많이 지쳐 보인다.

사람을 이루는 박스들은 머리, , , , 다리 등 각 부분들은 서로 다른 색과 줄무늬를 띠고 있다. 한 명의 사람일지라도 인체의 각 부분은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고 각 부분에 맞는 역할과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특색 있는 부분들로 구성된 사람은 하나의 특징만 가진 사회라는 구조에 잡혀있다. 어떤 사람은 현실을 이겨내려고 현실을 밟고 올라가고 있고, 다른 사람은 현실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박스를 잡고 안간힘을 쓰면서 매달려 있다. 그 모습이 힘들고 애처로워 보인다. 또 다른 사람은 마치 자살이라도 하는 듯, 절벽처럼 표현된 박스의 끝에 서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딛고 있다. 현실의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결국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삶을 포기하는 모습에서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이 모습을 보니 최근 자살한 모델김다울이 떠올랐다. 작가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자살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자살을 한 개인의 문제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생각하고, 국가에서도 책임을 지고 해결책을 찾으라고 촉구한다.

다른 한 사람은 아예 박스 사이에 깔린 채 짓눌려 있다.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는 팔과 겨우 박스 사이로 내민 얼굴에서 절망감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은 한 개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나아가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은 제한된 도움만 줄 수 있을 뿐이고, 국가적인 도움이 있어야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살아 갈수 있을 것이다. , 이 사람은 사회적 각성을 요구하는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눈을 가린 채 벽을 향해 있다. 현실이 싫어서 뒤돌아서서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다. 사회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개인의 사회에 대한 관심은 물론 국가적인 자각과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능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사람(작품 중앙의 사람)과 수동적이고 죽어있는 사람(베이지색 박스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잘 표현했다. 작품은 중앙에 있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는 이 사람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면서 현실에 속박당하지 말고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개성 즉, 본성을 찾고 주체적인 사람이 되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2] 타카하시 케이스케의 방향없음, 2008

 

 

이 작품은 비디오 영상이다.

처음에 영상을 멀리서 봤을 때는 이상한 상형문자 같은 것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이것은 상형문자가 아니라 사람의 모습이었다. 뛰는 사람, 걷는 사람, 춤추는 사람, 달리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등 여러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줄씩 여러 줄을 만들어 화면을 이루고 있다. 여러 줄 중에서 어떤 한 줄이 왼쪽으로 이동하면 그 밑에 줄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그 다음 줄은 다시 왼쪽으로 이동하는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영상에 나타난 사람들이 각각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줄이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사람들 각자가 지향하는 목표, 이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줄들은 왼쪽이면 왼쪽, 오른쪽이면 오른쪽, 한 쪽 방향으로만 이동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은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의 앞만 바라보면서 이동하고 있다. 옆과 뒤를 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왠지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줄을 만들고, 한 줄 한 줄이 일렬로 배열되어 화면을 이룬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면의 줄이 점점 작아지면서 멀어졌다. 하나의 긴 줄은 여러 개의 짧은 줄로 나누어지면서 서로 멀리 떨어졌다. 떨어진 줄들은 점점 더 멀어지면서 어떤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형상은 세계지도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한 사회를 이루고 여러 사회가 모여 국가를 이루고, 다시 여러 국가들이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의미 없게 보였던 여러 줄들이 모여서 의미 있는 커다란 세계가 된 것이다. 개인에서 전체로, 개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바뀌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세계를 이룬 모습은 낱개의 줄이 딱딱하게 나열되어 있을 때보다 따뜻한 느낌이 든다.

세계지도를 이룬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당신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세상은 개인이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작은 사람이 모여서 큰 세계가 만들어지듯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것을 하려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혼자 살아갈 때보다 함께 살아갈 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어떤 일을 혼자서 힘들게 하기보다는,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고 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적이고 따뜻한 삶이다. 이런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세계를 만들어 갈 때 그 과정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뜻을 모으기가 힘이 들고, 뜻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면서 그것을 이루어 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지도는 다시 하나의 줄을 이루는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전체를 나타내는 세계 속에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즉, 세계는 사람을 포함하고, 사람은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세계지도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는 갑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 과정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뜻을 이루었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기 때문에 힘들게 이룬 것이 금방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에서 한 개인으로 쉽게 흩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다시 여러 줄이 세계지도를 이루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렇게 반복되는 영상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영상에서 기계적인 신호라고 생각한 것이 재구성되어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지자 신기하면서도 아이러니 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개별성과 통합성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영상과 함께 나왔던 배경음악은 작품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독특한 음악이어서 영상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규칙적인 음이 반복되어서 작품에 집중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작품 속을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