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1. 민족주의란?
민족주의란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스스로의 일체성이나자립성 혹은 우월성을 주장‧과시하는 감정‧사상‧이데올로기의 총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근대국가 수립을 향한 일종의 정치운동으로 전재하였으며, 종족적․문화적 근거를 갖기는 하나 다분히 근대 부르주아 계급이나 국민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유도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자민족 중심주의, 극우민족주의, 파시즘, 인종주의, 패권주의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본론>
1. 한국의 민족주의 발생배경과 특징
(1) 일제강점기
19세기말 이후 조선왕조의 근대국민국가로의 전환 실패 및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 경험은 한반도의 민족주의에 저항적 성격과 유토피아적 성격을 불어넣었다. 특히 식민지라는 상실의 경험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근대 국민국가에 절대성과 완전성을 부여하였고, 이는 동시에 일본제국주의의 추방이라는 저항적 성격을 내면화시켰다.
(2) 광복과 남북분단
광복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냉전체제가 심화되면서 한반도에는 미소의 지원을 받는 두 개의 국가가 건설되었고, 이들의 적대는 결국 동족간의 전쟁을 가져왔다. 그래서 광복 이후 한반도의 민족주의 목표는 통일국민국가 아래에서의 근대화와 식민유산의 청산이 아닌, 남한에서는 반공, 북한에서는 반미로 변질되었다. 냉전으로 인한 남북한의 이질적인 국가건설 및 국민형성과 상호 적대적인 정책은 한국 민족주의가 같은 민족인 북한을 적대․배제하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분단 이후의 한국의 민족주의는 하나의 국민국가 건설, 즉 통일을 지향하는 통합성과 북한을 배척하고 적대하는 배타성 또는 상호적대성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3) 독재정권
1950년대 이래 한국에서의 권위주의 정권은 ‘반공통일’이라는 담론 이외의 어떤 다른 통일담론도 허용하지 않았고 이는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통일 담론은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서만 논의될 수 있었고 아래로부터의 통일 담론과 현실적인 행동은 탄압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한국 민족주의는 상당기간 반공에 압도되어 통합성보다 배타성이 강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채 존재하였다.
(4) 근대화와 경제성장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탄압되었던 통일 담론의 빈자리를 매운 것은‘경제발전/근대화’담론이었다. 이는 당시의 후진적인 경제상황과 박정희 정권의‘선건설 후통일’논리에 의해 그 민족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에 주력을 함으로써, 국민을 국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인적자원으로 보았으며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전체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로 인해 민족주의는 획일주의와 국가주의로 또 한 번 변질되었다.
2. 스포츠 속에 담겨진 한국의 민족주의
(1) 스포츠 민족주의란?
스포츠 민족주의란 스포츠를 통해서 개인이 응원하는 팀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이나 국가와 감정적, 정서적 일체감과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을 말한다.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경쟁적, 대결적 속성은 무엇보다도 집단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유럽의 훌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열광적인 팬들이 경기의 승패에 따라 난동을 부리거나 서로 패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스포츠가 감정적인 집단의식을 얼마나 잘 동원할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는 오래전부터 민족주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2) 한국 스포츠 민족주의가 다른 나라의 스포츠 민족주의와 다른점
● 식민지 시대에서 생겨난 저항적&배타적 민족주의가 자연스레 스포츠에도 묻어나 있다.
한국인은 스포츠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한국 대표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한국 대표선수들도 무조건 이겨야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스포츠를 즐기기보다 스포츠를 매개로 상대 나라와 전쟁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한국인들은 한일전에서 한국이 일본에 이기는 것은 스포츠에서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에게 그동안의 복수를 갚아준 것과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 이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식민지 시대에 발생해 저항적이고 배타적인 특징을 갖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분단이라는 상황이 스포츠 민족주의를 더 강력하게 만들었다.
스포츠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국위선양을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이점은 전쟁을 치른 나라가 갖고있는 스포츠 민족주의의 공통된 특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스포츠 민족주의가 반공주의 또는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성격을 갖도록 만든다. 그래서 북한과의 경기에서의 승리를 남한의 정치적 체제의 우월성과 경제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 발생배경부터 다른 나라와 달리 스포츠가 전체주의, 획일주의적 경향을 갖는다.
스포츠민족주의가 발생한 배경으로 박정희 정책을 들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국민들의 민주주의 염원을 담고 출범한 민주당 정권을 군사쿠데타를 통해 전복시키고 집권한 정권이다. 또한 박정희 개인의 임기 연장을 위해 삼선개헌과 유신체제의 선포 등 권위주의 독재 정권을 구축하였다. 따라서 박정희 정권이 자신들의 정통성 부재를 만회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사회․경제적 격차의 확대에 따른 사회적 불만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스포츠를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스포츠 안에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희생해도 좋다는 국가주의를 내포시키고, 민족주의를 국가주의로 변질시켜버렸다. 이로 인해 한국의 스포츠 민족주의가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주의적 경향을 갖게 되었다. 가령 박태환선수가 대회에서 가슴에 손을 얹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모습과,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를 ‘민간 외교 사절’로 추앙하는 모습에서 한국의 스포츠 민족주의 속에 담겨진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볼 수 있다.
● 한국 스포츠 민족주의에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 담겨 있다.
1990년대 초반 세계화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밀려오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국 민족주의에는 경제민족주의라는 새로운 담론이 부상하게 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타결되고 국제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그동안 국가의 보호 아래 성장하였던 국내 자본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수출량이 줄어들고 외환수지도 적자로 돌아서는 등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김영삼 정권은‘국제화’를 국정목표로 삼고‘각 부문에서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선포하였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할 부문에는 당연히 스포츠도 포함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스포츠 민족주의에는 결과지상주의, 속도주의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장기적인 투자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종목들은 육성하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또 금메달이나 우승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스포츠를 국가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요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더 심화된다. IMF관리체제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으로 다가옴으로써 한국인들은 압축경제성장으로 얻은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또 일반적으로 민족주의가 위기의 국면에서 더 확산이 잘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더욱 강해졌다.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경제위기 극복에 관심을 집중하였고, 이는 경제민족주의를 더욱 확산시켰다.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관심은 스포츠의 영역까지 확산되어 당시 박찬호와 박세리는 나라를 구해낸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였고, 현재는 박지성과 이승엽 등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을 ‘자랑스런 대한건아’라고 칭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장애인 스포츠 스타들의 인지도와 비 인기종목의 지원을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한국이 얼마나‘스포츠를 국위선양과 경제성장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 스포츠 민족주의와 상업주의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언론과 기업들은 이러한 스포츠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미 올림픽과 같은 거대 스포츠 경기는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되었다. 스포츠는 온 국민을 하나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해 현실적으로 돈을 벌기가 좋기 때문이다. 김연아, 박지성 등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스포츠 스타라고 칭하며 과도하게 국민적 영웅으로 받들면, 한국 사회는 그러한 ‘영웅’들의 활약상에 대해 단 한마디의 이견조차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방송기업은 ‘영웅’들이 등장하는 스포츠 경기의 중계권을 독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스포츠 용품 및 의류업체들은 자신의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선수들을 상품매매를 위한 광고 도구로 이용한다.
이렇게 스포츠와 상업주의가 깊이 연관될 수 있었던 것은 1982년 전두환 정권 때 프로야구의 출범을 시작으로 스포츠가 개인의 일상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내고 1인당 국민소득은 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 평균 명목임금이 176,000원을 넘지 못하고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졌다. 이때 전두환 정권은 갈수록 심해지는 계급갈등을 덮기 위해 올림픽이나 프로 스포츠를 이용했다. 특히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상당수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예외적인 능력으로 계급의 벽을 뚫었기 때문에 ‘열심히 뛰면 된다’는 ‘노력과 성공’의 신화를 뒷받침하고 있어 국민에게 희망마저 줄 수 있었다. 즉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출범한 프로 야구가 점차 안방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언론과 기업은 이를 상업적인 이윤을 남기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게 됨에 따라, 한국의 스포츠가 상업주의와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박노자, <우등열패의 신화 : 사회진화론과 한국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2005, 한겨레신문사
(3) 한국 스포츠 민족주의를 보여주는 사례
●
김일 경기모습
김일, 박치기로 암울한 국민의 마음을 뚫어주다
역도산의 제자 김일은 '한국의 역도산'이었다. 60년대 한국인들은 식민지, 전쟁, 가난이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김일이라는 영웅에 열광했다. 역도산이 그랬듯이, 김일은 링 위에서 일본인들, 미국인들을 물리쳤다. 박치기로 시원하게 물리치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마치 한국이 일본과 외세를 물리친다는 통쾌함과 함께 대리만족을 느꼈다.
김일의 박치기는 외세의 침탈에 고통받던 국민에게 대리만족감과 가난한 현실에 대한 위안을 심어주었다. 원초적인 방식으로 힘을 겨루는 격투기는 일본과 외세에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욕구와 잘 맞아 떨어졌고, 격투기가 내세우는 헝그리 정신은 당시 국민들에게 가난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탈출할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국민들에게 스포츠는 단순히 여가로서의 즐거움이 아닌 하나의 전쟁으로, 한국인들의 역사적인 아픔을 달래주는 기능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 "김연아와 故손기정은 한국의 자존심"
김연아 선수
뉴욕타임스는 '자유를 위해 싸웠던 한국의 올림픽 영웅(Korean Olympic Hero Championed Liberty)'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스포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손기정에 이어 김연아 선수가 '한국의 자존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슬픈 월계관’.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한 손기정, 남승룡 선수는 우승의 기쁨보다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는 슬픔에 고개를 숙였다.
타임스는 "김연아는 이제 불과 19세 소녀이지만 내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금메달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며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다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이후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즉, 김연아가 일제 강점기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손기정처럼 한국인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심어줄 것이라는 것이다.
故손기정은 올림픽에 출전해 2시간29분19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지만, 일제 치하에서는 일장기를 달고 출전할 수밖에 없어 고개를 숙인 채 월계관을 썼다. 그로인해 당시 그는 한국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상징이 된 사람이다.
김연아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 분(손기정)에 대해 알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 분이 일제 식민치하에서 올림픽에 출전해 우승했다는 사실을 안다. 나도 그 분처럼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아와 손기정은 비록 이유는 다르지만 한국의 국민적 자존심을 지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스포츠를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스포츠조선 신문, 뉴욕타임스 "김연아는 손기정에 비견되는 역사적 영웅"2009-11-15
● 히딩크를 대통령에 앉히자
2002월드컵
오늘날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축제이며 모두가 열광할 수 있고, 전 지구가 하나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는 대단히 중요한 축제가 되었다.
실제로 월드컵의 열기는 이미 오래전에 올림픽의 열기를 뛰어넘었다. 올림픽은 주로 25~30개 종목에서 300여부분에서 승자를 가리는 매우 큰 대회이지만 정작 수익 면 에서는 축구하나만 열리는 월드컵에 오히려 뒤쳐지고 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경기장 관람객 수가 50만 명에 달했고, 총 213개국의 텔레비전중계를 통해 연인원 370억 명이 월드컵을 시청했다. 이는 올림픽의 2배되는 수치이다.
물론 올림픽은 순수 스포츠축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월드컵은 FIFA에서 철저히 상업적인 면을 추구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참가국 수와 규모를 봤을 때 월드컵의 위상과 인기는 대단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특히 대한민국에서의 월드컵 열기는 2002년에 월드컵을 개최하고 4강을 이뤄낸 이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히딩크 감독과 태극전사들은 유명 연예인을 뛰어넘는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월드컵은 국가 최고의 축제가 되었다. 장난식의 발언이었지만 히딩크를 대통령에 앉히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한국 팀의 승리를 바라는 모습과 압도적인 응원에 힘입어 4강에 한걸음씩 다가섰던 태극전사들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월드컵을 세계인의 축제 혹은 스포츠축제로 생각하지 않고, 한경기 한경기를 국가 간의 전투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경기에서 승리하면 선수들은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패배하면 국가적인 매장을 시키지 못해 안달한다.
이러한 경향의 원인은 바로 과도한 민족주의, 애국주의, 국가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를 강조하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민족 또는 국가에 최고의 충성심을 가져야만 한다. 2002년을 기점으로 월드컵은 애국을 증명하는 기준이 되었고 다툼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월드컵에서 자신의 나라를 응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어디까지나 월드컵은 축구라는 한 스포츠축제이지 국가 간의 싸움이 아니다. 한국의 언론과 사회는 항상 스포츠의 순수성을 망각하고 월드컵에 과도한 민족주의를 심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이 진리인양 둔갑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민족 구성원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이 억압될 수 있고 외부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 싹틀 수 있기 때문에 월드컵에서 과도한 민족주의의 모습은 상당히 위험하다.
●
추성훈
추성훈‘성공 못하면 외국인, 성공하면 한국인의 피 ’
대다수의 사람들은, 2000년 초반 추성훈이 한국에서 유도선수로 뛸 땐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일본으로 돌아가 격투기선수로 성공하자 갑자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2006년 한반도를 휩쓴 '하인즈 워드 신드롬'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에선 '성공 못하면 외국인, 성공하면 한국인의 피'가 된다.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이는 스포츠를 민족 자부심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오랜 습성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성공하면 선수들은 민족의 국력을 높여주었기 때문에 관심과 사랑을 받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국력에 막대한 손실을 주었기 때문에 비난받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노컷뉴스, 추성훈 UFC 데뷔…성공 못하면 외국인, 성공하면 한국인의 피 2009-06-05
<마무리>
3. 한국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4)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
● 위험한 이데올로기로 보는 관점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계층적, 지역적, 성적 갈등을 은폐하는 정치적 도구로서, 거기에는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특히, 스포츠 민족주의는 냉혹한 승부 세계로 인해 자본주의와 국민국가의 시대에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를 고스란히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요컨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에는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고, 체제에 대한 순응과 정치적 무관심과 인간의 주체성을 죽이는 군중심리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붉은악마’와 같은 단체행동은 파시즘을 가능하게 하는 병적인 현상으로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의 광기를 감추고 있는 불길한 현상이다.
●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보는 관점
2000년대에 접어들어 지구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거나 외국인과 접촉할 기회가 크게 늘어났으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 한국인과 외국인의 결혼도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화 시대에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타민족․타인종에 대한 차별과 멸시로 이어져 심각한 인종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또 개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획일주의의 성격을 띠는 민족주의는 한국 내에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세계화의 흐름을 거부하는 편협한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수밖에 없다. 이선민,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 2008, 경제연구소
(5)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
● 보수적 관점
민족주의를‘신민족주의’혹은 신애국주의’로 해석하는 관점이다. 보수적 관점은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의 승리를 국운 융성의 증거로 본다. 70년대 개발 독재의 근대화가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것으로 증명되고, 경기의 응원을 위한 일사분란한 질서 의식을 성숙한 사회 발전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 진보적 관점
‘열린 민족주의’로의 발전의 계기로 보는 시각이다. 이 해석에서 월드컵은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등으로 이어진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하는 일종의 ‘씻김굿’이다. 그리고 ‘Be the Reds!’라는 구호와 붉은 티는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가 극복되고 있음을 말해주며, 따라서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열린 민족주의로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 이념적 자원으로 보는 관점
민족주의는 한국적 현실에서 중요한 이념적 자원으로 제시될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그 시작이 강대국의 민족주의인 제국주의적 정향과는 달리 정당방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주어 식민지 지배, 외세 개입, 독재 등에 의해 받았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나아가서는 국제 사회에서 떳떳하게 활동하는 데 일종의 정신적 지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맹목적인 반공, 반북주의에서 벗어나 전체‘민족적 관점’으로 통일 문제를 보게 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최상용, <민족주의, 평화, 중용>, 2007, 까치글방
(6) 민족주의에 대해 무관심한 관점
모든 현상은 본질적으로 민족주의와 무관한 것으로 보는 일종의‘탈이데올로기’관점이다. 이 관점은 한국의 스포츠에 열광하는 현상을 바라볼 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민족주의와 연관 짓는 자체가 과잉 해석이라며 비난한다. 따라서 ‘붉은악마’현상도 단순히‘재미’의 코드일 뿐이며, 스포츠를 통해서 국민의 애국심과 민족주의 정서를 재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 한국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바람직하게 만들 것인가?
(7) 시민적 민족주의
시민적 민족주의는 한 민족국가의 사회의 경계 내에서 민중이 주체가 되어 민주주의와 평화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 가장 현실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이상주의적이라는 문제의식에 입각한 것이다. 한국 민족주의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원적인 원인은 사회주의적-민주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의 실패와 해체라고 할 수 있다. 여운영, 김규식 등에 의해서 체현되었던 사회주의적 전통은 해방 이후 좌우로의 양극분화 속에서 해체되었다. 또 우파 민족주의는 냉전 하에서 극우 반공주의로 변질되었다. 그 이후 민족주의는 안보를 핑계로 정권유지의 차원에서 권력 엘리트들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중주의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민족주의의 주체를 시민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안보가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도모하고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보다 투명해지고 민주적 관리하에 놓는 것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상용, <민족주의, 평화, 중용>, 2007, 까치글방
(8) 평화 민족주의
평화 민족주의는 남한과 북한의 이념을 초월한 이질감 해소와 민족동질성 회복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민족주의가 한국에서 독특한 특징을 갖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남북분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은 민족공동체의 분단으로 인해 아직도 민족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상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문제가 남북한 사회 각각의 구조와 성격을 재생산하는 데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게 민족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삶을 일정하게 규정하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오늘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민족주의의 최대 과제는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의 통일은 민주주의 이념의 추구와 그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연성은 없다. 또 통일이 당위적이며 필연적이라는 말도 아니다. 여기서 통일이란 남북이 서로를 하나의 국가체제로 인정하고 남북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말한다. 남북이 평등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정립하는 데에는 평화 민족주의가 큰 이념적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상모, <위기의 한민족, 평화 민족주의로 넘는다>, 2005, 풀빛
(9) 열린 민족주의
이미 세계화 시대가 보편화되었고, 이후에도 강력한 작동원리의 하나로 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더 이상 지배와 독점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벗어나 다원적 세계화를 지향하는 열린 민족주의로 변할 것이 요구된다. 즉 국가를 하나의 실체로서 인정하고, 그 위에서 가능한 보편적 인류공동체의 원리를 모색하는 민족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통합, 동화로부터 가능한 공존과 조화, 균형으로의 의식과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모든 문화의 특유한 원칙과 가치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차별적 다문화주의의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게다가 문화 간의 협동을 강조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평화를 추구하는 열린 민족주의는 평화민족주의의 문화론적 기반도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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